재개발이 확정되어 딱 1년 반만 살게 될 16평 전셋집이지만 정재연 씨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5년간의 뉴욕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가구와 소품으로 꾸며낸 사랑스런 공간, 원칙 있는 꾸밈 이야기.

지어진 지 25년이 넘은, 이미 한 번의 개조 공사(다용도실과 베란다 확장) 전력이 있는 아파트. 1년 반만 살면 없어질 집에 돈 들일 필요가 없었기에 회벽으로 마감하고 싶었던 욕심을 접고, 방산시장에서 가장 저렴한 벽지와 장판을 골랐다(인건비 포함 도배 22만원, 바닥 32만원). 화이트 벽지라 바닥재는 약간 짙은 색을 선택했다. 도배하기 이틀 전엔 현관문, 방문, 창틀, 문틀을 직접 페인팅했는데 처음에는 연한 베이지색 유광 페인트를 사용했다고 한다. “해놓고 보니 번쩍거리는 것이 영 맘에 안 들더군요. 그래서 화이트 수성 페인트로 방문과 현관문만 다시 칠했어요.” 문과 문틀이 화이트와 연베이지색, 유광과 무광의 미묘한 투 톤이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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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연 씨네 첫인상, 서재방

현관문을 열었을 때 작은 방이 바로 보인다. 정재연 씨는 이 점을 최대한 활용, 시선이 처음 닿는 공간에 미국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던 근사한 디자인의 책상을 두고 그 위에 스탠드를 올렸으며 벽면엔 액자를 걸었다(책상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에 맞춰 낮게 건 액자는 여백을 극대화한다). 물론 이곳이 곧바로 들여다보이도록 서재 방문은 항상 열어둔 채다. 좁고 물건이 많았지만, 그녀의 집이 여백이 있는 곳으로 기억되는 것은 이 첫인상의 효과 때문일지도 모른다.

색을 너무 많이 사용한 집은 어수선해 보이고, 색을 너무 절제한 집은 마냥 심심하다. 정재연 씨는 화이트를 기본으로 하고 짙은 밤색과 블랙으로 무게를 잡아준 뒤, 화사한 ‘포인트 색상’을 썼다.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안방. 이케아에서 구입한 화이트 광목 커튼으로 시스템 옷장을 가려 온통 화이트 기분이 드는 안방의 ‘베드 스프레드’를 과감하게 오렌지색으로 선택한 것. “귀국 직전 ‘포터리 반’에서 이처럼 세팅된 것을 봤는데 너무 예뻐서 세팅된 그대로(블랙 쿠션 2개, 오렌지빛 쿠션, 베드 스프레드) 달라고 했어요. 안방에 포인트를 어떻게 줄 것인지 고민할 때였는데, 이것으로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지요.” 그녀는 거실이라면, 한쪽 벽면에 포인트 벽지를 붙이거나, 테이블 위에 꽃을 꽃아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 화이트 일색 안방, 포인트 컬러는 오렌지
침대 위에는 총 7개의 베개와 쿠션이 오종종 세팅되어 있었다. 베드 스프레드를 벗겨내고 등받이 베개와 화이트 베개를 제외한 쿠션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잠을 잔 뒤, 아침에 일어나면 또 이렇게 정리해두곤 한다는 그녀. 부지런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인 듯.

 

▲ 이케아 화이트 광목천으로 가린 시스템 옷장
가격에 비해 디자인이 훌륭해서 귀국 전 이케아에 들러 구입한 조립식 행어. 6백 달러였는데 이틀간 꼬박 조립해야 했다. 안방에서 재밌는 점은, 커튼부터 시스템 행어 가리개까지 모두 화이트 광목천을 사용했다는 사실. 커튼, 가리개에 사용된 커튼 봉, 스탠드 모두 이케아 제품.

 

미국에서 가져온 짐이 워낙 많다 보니 처음엔 막막하고 골치 아팠다는 정재연 씨. 일단은, 거실에서 사용하던 것들은 거실에, 침실에서 사용하던 것들은 침실에, 서재에 두었던 것은 서재방에 몰아넣고 어쨌든 그 공간에 전부 수납하려고 노력했다. “이전에 살던 집이 넓긴 했지만 방이 하나라 서재와 거실이 구분되지 않았었어요. 지금은 비록 집은 좁지만 방이 2개라 서재와 거실이 따로 분리되니 좋네요. 오히려 정돈된 느낌이거든요. 지내볼수록 이 구조가 참 괜찮더라고요.”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이라고 겸손해했지만, 그녀의 가구 배치는 범상치 않다. 소파 자리와 맞은편에 TV장을 놓은 것은 다른 집들과 다를 것이 없지만, 거실을 향한 방향으로 CD장을 두고, 식탁을 베란다 쪽(주방이 작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으로 두고, 서재방 문 앞에 예쁜 책상을 두었을 뿐 아니라 거실 테이블을 거실 중앙에 꽉 차게 들여놓았으니 말이다. 이런 식의 가구 배치는, 벽면에 가구를 몰아 중앙을 비워두는 가구 배치에서 느껴지는 썰렁함을 커버해주면서 꽉 찬, 충만한 기분을 준다.

▲ 베란다로 옮겨진 식탁
식탁과 의자는 뉴욕의 플리마켓에서 구입한 것. 퀘이커 교도들이 사용했음직한 정직한 직선과 우직한 디자인이 맘에 들었단다. 식탁 위에 올려둔 문살은 남편이 고등학생 때부터 보관해온 것인데 할머니가 사시던 한옥을 허물 때 떼어온 것이라고.

 

철물점에서 20달러에 구입했던 사다리. 별 필요가 없었는데도 오래전부터 갖고 싶어 별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는 이 사다리는 뉴욕에 있을 땐 두 다리를 묶어 벽에 고정시킨 뒤 계단마다 CD를 꽂아두는 용도로 사용했었다고 한다. 이곳으로 이사 온 뒤엔 턱없이 부족한 수납 공간으로 사용하면 좋을 듯싶어 바구니를 구입, 층층마다 넣어두고 수납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사다리를 꼭 사다리로만 사용하라는 법은 없지요. 가끔은 이 엉뚱한 용도로 인해 집이 재밌어지니까요.”

 

▲ 사다리를 활용, 색다르게 꾸민 주방
뉴욕에 있던 5년간, 정재연 씨는 백화점 홍보일을 하면서 틈틈이 국내 여러 잡지의 뉴욕 통신원으로 활약했다. 그녀의 이름이 낯익다면 바로 이 때문. 틀을 깨는 가구 배치와 창조적인 소품 활용으로 아파트가 가진 정형성을 탈피하고 있는 그녀의 집은 누구나 ‘아티스트’를 꿈꾼다는 뉴욕에서 그녀가 얻었던 자유롭고 다채로운 경험 덕일지도 모른다.

 

거실 소파 뒤 벽면에 매단 선반. 그 위치 선정 또한 절묘하다. 선반 2개를 동일한 높이에 달고 그 위에 선반 하나를 더 달았는데, 나란하지 않게끔 아래 선반들과 조금 어긋나게 부착, 동적인 기분을 줬다. 선반 위에 놓인 빈티지 소품의 배치 또한 보통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집주인의 추억이 담긴 동시에 집주인의 안목을 보여주고 있는 이 소품들은, 통일감이 느껴지면서도 단조롭지 않게 진열되어 있었다. “멋진 ‘배치’를 위해서는 소품이 많다고 있는 대로 내놓기보다는 가장 좋아하는 것만 꺼내놓고 나머지는 보관해두는 지혜가 필요해요.” 엄선(?)된 소품을 배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 맞는지의 여부. 먼저 큰 것부터 놔보고 작은 것을 사이사이에 배치해보면 쉽게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이때도 비슷비슷한 색상끼리 모아주면 금상첨화라고.

▲ 브라운, 블랙, 화이트로 꾸며진 거실
정재연 씨의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 바로 거실이다. 정재연 씨 부부가 미국에서 하나 둘 모았던 빈티지 소품들로 꾸민 거실은,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공간. 월너트 선반은 이전 집에서부터 사용하던 이케아 제품이고, 블랙 CD장 또한 이전부터 사용하던 제품이다. 3인용 중국 의자는 집 분위기와 딱 어울릴 것 같아 귀국한 뒤 친정에서 가져온 것. 화이트 쿠션과 너무 잘 어울린다.

 

▲ 오밀조밀한 벽면 활용
현관문과 거실 사이의 좁은 벽면에는 뉴욕에서 알게 된 화가 ‘송시선’씨가 그린 그림을 걸어두었다. 작은 캔버스에 그린 흑백 그림은 화이트 벽지를 배경으로 돋보인다. 거실 맞은편 벽이 아닌 왼쪽 벽에 선반을 달아 거실은 더더욱 입체적인 느낌.

 

▲ 정재연 씨네 16평 아파트 평면도

 





1 프런트 스피커, 스툴 위에 배치 미국에 있을 때 먼저 귀국하던 사람들이 주고 갔다는 접이식 스툴. 그녀는 버리지 않고 끝까지 들고 와서 프런트 스피커를 올려두는 용도로 사용 중인데 그 배치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2 집이 좁을수록 필요한 거실 테이블 집이 좁을수록 공간을 비워둬야 넓어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가구가 어느 정도 채워져 있을 때 좀 더 넓어 보인다. 이케아에서 구입해 오랫동안 새것처럼 사용하고 있는 거실 테이블은 리모컨 서랍도 있고, 빈 공간엔 읽다만 책을 수납할 수 있다. Jaeyeon's Sense 테이블 위에 유리를 깔기 싫다면 매트를 사용할 것 반사가 생기고 재료 자체의 나뭇결도 느낄 수 없어 가구(특히 테이블) 위에 절대 유리를 얹지 않는다는 정재연 씨. 유리를 얹지 않았을 때의 단점인 ‘흠집’과 ‘오염’은 매트를 사용해서 해결한다. 커피 한잔을 대접할 때도 매트를 꼭 깔고 커피잔을 놓는다. 테이블 서랍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꺼내 사용한다.
3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빈티지 선풍기 고장난 거라 사용할 수는 없지만 장식용으론 그만이다.
4 투명 꽃병에 담은 포푸리 알록달록한 꽃잎이 아닌 연한 나무색 포푸리는 1년 반 전쯤 ‘포트리 반’에서 구입, 내내 사용했던 것. 지금껏 달콤한 향이 나는데, 투명한 유리 꽃병에 담아 거실 테이블 위에 두었다.
5 낡은 잡지 활용, 벽면 장식하기 뉴욕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만났던 1960년대에 출간된 『라이프』지와 『보그』 잡지. 빈티지 기분이 좋아 구입했단다. 구입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투명 비닐에 싸서 TV옆 선반에 세워뒀는데, 집 분위기와 잘 어울려 더욱 돋보이는 소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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