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스위트 룸, 욕실

욕 실 2007. 8. 11. 23:11 Posted by 비회원
제22호 | 20070811 입력
주방의 개념이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었듯 변화의 선상에 있는 다음 타자는 다름 아닌 욕실이다. 감추고 싶은 공간에서 보여주고 싶은 곳, 생활의 중심으로 들어온 욕실의 진화. 새로운 문화를 제시할 수 있는 욕실 트렌드 살펴보기. 글 박소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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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탁이 디자인한 홍콩의 ‘알렉스’라는 레스토랑의 화장실은 볼일(?)을 보며 홍콩의 야경을 구경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유명하며, 영국의 ‘스케치’라는 레스토랑은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의 화장실들이 각각 알처럼 생긴 개별 공간에 들어가 있어 멀리서 보면 거대한 설치작품처럼 보인다. 청담동의 퓨전 일식 레스토랑 ‘타니’는 유리의 반사효과로 보이는 꽃밭 같은 화장실로 화제가 됐다.

상업적인 공간 특히 레스토랑이나 카페, 바와 같은 곳에서 화장실은 그곳의 이미지를 결정 짓는 요인이 된다. 그렇다면 가정에서의 욕실은? 매우 개인적인 공간인 듯하지만 오히려 그만큼 주인장의 성향과 취향, 문화적인 감성까지 느낄 수 있는 핵심적인 공간이다. 화장실이 깨끗하다면 감히 그를 깔끔한 성격이라 말할 수 있고, 칫솔꽂이 하나까지 감각적이라면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감각을 가진 이라고 판단해도 좋다.

출근 전 잠시 화장실에 들르는 사람이든, 반신욕을 즐기며 한 시간 이상 욕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웰빙족이든 욕실은 집 안의 어느 공간보다 가장 자주 드나드는 공간이므로. 분명 욕실문화는 바뀌어가고 있고 나름의 트렌드가 떠오르고 있다. 단 하나의 스타일로 집약되지는 않지만 커다란 흐름을 이야기하라면 답은 바로 ‘디자인’이다. 욕실제품 전문 브랜드 아메리칸 스탠다드에서 2006년 소비자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욕실제품을 고를 때 가장 고려하는 요소가 가격이 아닌 디자인으로 나타났다
.

예전에는 그저 실용성만 강조했다면 이제는 집 안의 전체적인 인테리어 컨셉트와 맞춰 미리 구상하는 디자인 욕실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칸 스탠다드는 조셉 로넨과 아킴 폴, 토마스 피에글과 같은 유럽의 유명 디자이너와 손잡고 ‘스위트 라인’을 소개하고 있다.
욕조·세면대·변기 등 각기 주인공이 되어 디자인을 뽐내기보다는 하나의 컨셉트 아래 조화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점이 특징이다. 세면대와 욕조 소품 모두가 유기적인 형태를 보여줌으로써 조화로운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것은 현재 욕실 디자인의 기본적인 철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려하게 섬세하게

디자인에 끝은 없다
수도꼭지 하나도 더 이상 물을 틀기 위한 것만이 아닌 욕실의 중요한 장식물로 도약을 거듭하고 있다. 이노 디자인이 대림통상과 함께 선보인 ‘원컬렉션(One collection)’의 수도꼭지는 물을 공급하는 기능을 넘어 나뭇가지 모양을 형상화해 취향에 맞게 꽃을 꽂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고 물이 나오는 모습마저 예술적이다. 이탈리아 수전 브랜드 뉴폼사의 ‘모르포(Morpho)’ 시리즈도 수도꼭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이중나선형의 DNA 구조나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는 미래적인 외형으로 수도꼭지가 하나의 오브제로 전환되어 아방가르드한 멋을 지니고 있다. 악솔로의 ‘레이디 X’라는 욕조는 항공기와 냉장고에 쓰이는 스테인리스를 사용해 극도의 모던함을 강조한 제품으로 유명하다. 모두 핸드메이드로 만들어지는 이 욕조는 외부에 알루미늄 판금을 사용해 물의 온도를 효과적으로 유지시켜주는 기능까지 갖췄다.

욕실에서 수전과 세면기 등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선반 또는 수납공간이다. 수납공간을 벽면 안으로 집어넣어 슬라이딩 도어가 달린 거울을 설치하거나, 물탱크와 배수관을 숨기고 그곳에 다른 수납공간을 만드는 등 쾌적하되 공간을 빈틈없이 사용하는 아이디어가 활용되고 있다. 반대로 수납공간을 하나의 가구로 생각해 컬러나 소재를 적절히 활용, 욕실에 포인트를 주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마스텔라라는 브랜드는 모던한 디자인에 특유의 과감한 컬러를 사용해 특별한 타일이나 장식품 없이도 욕실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또 다른 변화는 ‘내추럴’이라는 키워드. 각박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자연의 향기를 만끽하고 싶은 욕망이랄까. 욕조 옆에 큰 통창을 내어 테라스나 정원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히노키 욕조나 돌로 된 세면대와 같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는가 하면, 건축 외관에 자주 쓰였던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해 그 자체로 자연스럽고 내추럴함을 강조한다. 특히 피톤치드라는 성분으로 살균작용을 돕고 독특한 향기로 혈액순환, 피로해소 기능을 가진 히노키 욕조는 몇 해 전부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 예로 제주도 핑크스 골프 클럽에서 선보인 비오토피아 빌라 안에는 히노키탕이 있는 욕실과 야외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삼방산이 보이는 비오토피아의 멋진 경관과 세련된 인테리어보다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야외 욕실을 이곳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물이 스며들며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돌과 나무는 어쩌면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욕실과 찰떡궁합 소재라 할 수 있겠다. 윤현상재에서 선보이는 ‘스톤 베이신’은 천연석의 질감을 살리며 장인이 직접 깎아 만든 세면대와 욕조다. 자연친화적이면서 미끄럼 방지기능까지 할 수 있는 적삼목과 같은 욕실용 우드 또한 건실 욕실 바닥에 사용하면 좋다.
 
기능만은 최첨단
아름답고 감각적인 디자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기능·실용성이다. “열선이 들어있는 김 서림 방지장치와 기능적인 라이팅 그리고 사고를 예방하는 보조기구들이야말로 가장 필요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기본적인 부분입니다.” 디자이너 마영범의 이야기. 한밤중에 잠에 취해 화장실을 갈 때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본다. ‘불을 켤 것인가 말 것인가’ 하고 말이다. 변기 뒤쪽에서 은은하게 비치는 기능성 라이트, 코털이나 피부의 섬세한 조직까지 볼 수 있는 거울, 욕조에서 나왔을 때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타일 등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최첨단 기능 제품들은 끊임없이 개발 중이다. 육안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있어 습기 및 냄새를 제거할 수 있는 특수 타일들도 많이 사용하는 추세. 항균변기와 세면대도 그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아메리칸 스탠다드의 경우 패밀리 헬스 기술로 대장균과 포도상구균을 박멸하는 항균 첨가물을 변기와 싱크대의 유약 및 광택제에 혼합시켰다. 악취제거 역할까지 하는 이 기술은 주부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마사지 기능이 있는 샤워기도 인기다. 욕실에서 피로를 풀고 싶지만 월풀 욕조까지 설치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핸들샤워·레인샤워·보디샤워로 안마기능까지 가미된 샤워기는 필수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디자이너 최시영씨는 “욕실은 놀이터다”라고, 전어소시에디트의 이소란 과장은 “욕실은 문화를 창조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디자이너들은 이야기한다. 가정에서야말로 어떤 욕실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생리적인 작용을 해결하는 단순한 화장실이 될 수도, 행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는 리프레시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고. “이 시대의 개인을 위한 또 하나의 절대 공간. 나를 위한 휴식이고, 젊음을 위한 관리를 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이노 디자인의 오준식 이사의 생각 또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계속 머물고 싶은 공간, 삶의 오아시스와 같은 공간으로 거듭나는 욕실. 기능은 최첨단이지만 마치 갤러리에 온 듯 디자인과 분위기만은 감각적인 욕실의 시대가 도래할 날이 멀지 않았다. 

문의 윤현상재 02-540-0145, 악솔로 02-518-2566, 대림통상 02-730-9811, 아메리칸 스탠다드 1588-5906, 데꼬레 02-3449-0789, 고려디자인 02-3443-8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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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씨는 사람과 사회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감각의 촉수를 뻗어두고 있는 패션.라이프 스타일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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